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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역사기록물 콘텐츠 < 서울대학교 민주화의 길 2 > http://archives.snu.ac.kr:80/DAS/g.do?gidx=356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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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거 레코드

서울대학교 학도호국단 대외 공개

개요 정보
전거구분 기구/단체
분류 정책/행정 > 기구/조직
유의어 學徒護國團
상위어
관계어
하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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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교육단체

 

국립 서울대학교 설립 이전에도 서울대학교로 통합될 대학과 전문학교 학생들은 전국학생총연맹, 국립서울대학교 건설학생회, 재경학생행동통일촉성회 등의 학생 조직을 구성하여 활동하고 있었다. 그러나 1948년 문교부는 학생, 지역 단위의 학도호국대를 조직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하였고, 이에 중앙학도호국단 직속으로 1949년 4월에 서울대학교 학교호국단이 조직되어 4월 22일 서울운동장에서 중앙학도호국단 결성식을 가졌다. 9개 단과대학에 각 단과대학 학도호국단을 결성하고 그 연합체로서 '서울대학교 학도호국단'을 결성하였다. 단과대학 학도호국단 단장은 각 단과대학장이 맡았고, 총장은 서울대학교 학도호국단장을 맡았다. 학생운영위원장은 단장이 임명하였다. 학생운영위원회 산하에는 훈련부, 체육부, UN학생부, 후생부, 학예부, 공작부 등 6개 부서가 존재했고, 이와 함께 대대-중대-소대로 이루어진 학도호국대가 있었다. 

학도호국단의 설립 취지는 "(전략)…민족의 핵심체이며 추진체인 학도층의 사상통일과 유기적 조직단체적 훈련을 강화하여 신체를 단련하고 정신을 연마하여 학원을 수호하며 향토를 방위하고 나아가서는 국가를 위하여 헌신·봉사하는 실천력을 함양하고자 학도호국단을 조직한다."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로 학도호국단을 결성한 목적은 학교 내 좌익 학생들과 좌익 사상을 억제하기 위해 학생들에게 군대식 집단 훈련과 반공 사상 교육을 시켜 학생들을 통제하려는 것이었다. 1949년 9월 27일, '대한민국학도호국단규정'을 대통령령으로 공포하여 학도호국단을 통해서만 학생 조직을 구성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와 함께 기존에 존재하던 학생 자치 조직들은 모두 해산되었다.

학도호국단은 학생 자치 기구로서 다양한 학내 행사와 월간지 발행 등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러나 근본적인 창설 목적에 맞추어 이승만 정부의 의도에 맞는 다양한 정치 활동에 학생들을 장기간 동원하면서 학도호국단 해체론에 힘이 실리기 시작하였다. 이후 다양한 학생 운동에 의해 학도호국단 해체 열기가 불타올랐다. 1960년 4·19혁명과 함께 학도호국단이 해체되고 학생 자치 기구로서 '학생회'가 조직되었다. 학생회는 학도호국단을 대체하여 진정한 학생 자치 조직으로서 다양한 활동을 진행하였다. 그러나 당시 이승만 정권이 물러나고 박정희의 군사 정부가 들어서자 학생 활동은 침체기를 맞게 되었다.

1975년 당시의 급박한 국내외적 혼란을 잠재우고자 정부는 이른바 '긴급조치 9호'를 발동하였고, 이와 함께 학도호국단이 부활하였다. 부활한 학도호국단은 총장을 단장으로, 학생처장과 학생군사교육단장을 부단장으로 하여 중앙에 지도위원회를 두고 그 밑에 학생제대 및 운영위원회를 두었다. 학생제대는 일종의 군사 조직으로 사단, 연대, 대대, 중대, 소대, 분대 단위로 편성하였고, 대대 이상의 경우 산하에 총무부, 훈련부, 문예부, 새마을부, 체육부, 지도부, 여학생부 등을 두었다. 학도호국단 부활 이후 학생 자치 활동은 다시 위축되었다. 모든 학생 활동은 학도호국단의 틀 안에서만 이루어졌으며, 그마저도 까다로운 절차로 인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였다. 학생들에게서 강제로 거둔 단비 또한 불공정, 불투명하게 사용되어 학도호국단은 학생들의 외면을 받았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 피살 이후 유신 체제가 끝나자 학생회 재건 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그러나 5·17 쿠데타로 각 대학에 휴교령이 내려지면서 재건된 학생회는 다시 해체되고 학도호국단이 계속 실질적인 학생 대표 기구로 남게 되었다.

1980년 문교부는 새로운 '학도호국단 규칙 준칙'을 각 대학에 시달하고 학도호국단의 재조직을 지시하여, 서울대 또한 학도호국단을 재구성하였다. 모든 임원을 총장이 임명하던 방식에서, 과학생장은 학과장의 추천을 받아 총장이 임명하였다. 단과대학 학생장은 과학생장들 가운데서 호선하여 학장이 승인하고, 총학생장은 단과대학과 과학생장들이 호선하여 총장의 승인을 받는 방식을 택하였다. 1982년부터 과학생장은 학과장의 책임 아래 학과 구성원들의 직접 비밀 투표로 선출하였다. 과학생장 선거는 보통 11월 말에 진행했고, 여기서 뽑힌 과학생장들이 모여 12월 초에 단과대학 학생장을 뽑았다. 그리고 12월 중순 총학생장에 대한 간접 선거를 실시하였다. 이를 통해 선출된 학도호국단 간부들이 다음 연도의 학도호국단 활동을 이끌었다. 학생들이 학도호국단 간부 선출에 참여하면서 학도호국단은 조금씩 민주화되기 시작했다. 이를 바탕으로  학도호국단은 이후 학생 운동 발전과 학생회 재건의 토대가 되었다. 1983년 전두환 정부는 일련의 '학원 자율화' 조치를 발표했으나, 그 안에는 학생 자치 조직에 대한 규제 완화가 담겨있지 않았다. 그러나 학생들은 이 시기를 기회로 삼아 학생회 재건 운동을 통해 1984년 23대 총학생회를 선거를 구성하였다. 이와 동시에 학도호국단 간부들은 사퇴와 함께 해체를 선언하여 학도호국단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출처: 서울대학교 60년사 편찬위원회, 『서울대학교 60년사』, 2006.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

 

이력
시작일 종료일 내용
1948.11  연도 미상  문교부에서 학도호국대 조직 및 군사훈련 실시 계획을 담은 방침 발표 
1948.12  연도 미상  문교부에서 '학도호국단 준비 및 지도 요강' 작성 
1949.01  연도 미상  문교부에서 '학도호국단 조직 요강' 발표 
1949.04.20  연도 미상  중앙학도호국단 직속으로 서울대학교 학도호국단 조직 
1949.04.22  연도 미상  중앙학도호국단 결성식 개최 
1960.04  연도 미상  4·19 혁명으로 학도호국단 해체, 학생회 설립 
1975.05  연도 미상  '긴급 조치 9호' 발동으로 학도호국단 부활 
1979.10  연도 미상  박정희 대통령 피살 이후 학생회 재건 운동 전개 
1980.07  연도 미상  문교부에서 새로운 '학도호국단 규칙 준칙'을 각 대학에 시달, 학도호국단 재조직 지시 
1983  연도 미상  전두환 정부의 '학원 자율화' 조치 발표, 학생회 재건 운동 시작 
1984.09  연도 미상  제 23대 총학생회 구성, 학도호국단 해체 
제어 영역
규칙 및 협약
출처 서울대학교 60년사 편찬위원회, 『서울대학교 60년사』, 2006.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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