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설명
서울대학교 학생들은 정치적 민주화를 이루기 위해 독재에 맞서 싸우는 한편, 학내 민주화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도 멈추지 않았다. 학생사회의 민주화 열기가 확산되던 가운데 1983년 12월 21일, 정부는 ‘학원자율화 조치’를 발표하였다.
이듬해 1984년 학생회 재건은 학생운동의 대중화로 나아가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이전부터 이어져 오던 민족-민주-민중의 이념은 1980년대에 들어 학생운동의 조직화·과학화·대중화 과정 속에서 한층 더 뚜렷하게 자리 잡았다. 이 치열한 시대의 흐름 속에서 여러 서울대학교 학생들이 민주화를 향한 길 위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오늘날 서울대학교 교정 곳곳에는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목숨을 바친 19명의 서울대생을 추모하는 기념비들이 세워져, 그들의 뜻을 이어가고 있다.
서울대학교는 2007년 6월 항쟁 20주년을 맞아 ‘민주화의 길 조성위원회’를 설립하여 곳곳에 흩어진 추모기념물을 정비하고 안내표지판을 세우는 등 추모기념물을 하나의 길로 연결하는 작업을 2년에 걸쳐 진행했다. 2009년 11월 17일, 마침내 4·19 공원에서 시작해 사회과학대학-인문대학-자연과학대학-공과대학-농업생명과학대학에 이르는 1.2km의 ‘민주화의 길’이 완공되었다.
이번 콘텐츠는 서울대학교 학생운동의 역사를 되새길 수 있도록 구성한 '서울대학교 민주화의 길' 시리즈의 두 번째 편으로,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목숨을 바친 19명의 서울대생 중 6명의 뜻을 기리는 두번째 길이다. 이 가운데 학생운동과 관련하여 수배 중 의문사를 당한 우종원(사회복지학과 81학번)과 김성수(지리학과 86학번), 1986년 신림사거리에서 전방입소 거부시위 도중 반핵 반미구호를 외치며 분신 사망한 자연과학대학 학생회장 김세진(미생물학과 83학번)과 반전반핵투쟁위원장 이재호(정치학과 83학번), 같은 해 오월제 날 학생회관 옥상에서 분신하고 투신한 이동수(원예학과 83학번), 민주화 운동이 가장 격렬했던 1986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자신의 한계를 고민하다가 결국 한강에 투신한 박혜정(국문학과 83학번)의 뜻을 기리고자 기획되었다. 이를 위해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사건개요, 이들과 관련된 기록물을 수록하여 민주화운동의 치열했던 현장을 되새기고자 한다.
참고문헌
서울대학교 60년사 편찬위원회, 『서울대학교 60년사』, 2006.
서울대학교 70년사 편찬위원회, 『서울대학교 70년사』, 20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