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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렉션

추억 속의 캠퍼스 : 공과대학 1946-1975

개요 정보
구분 캠퍼스 > 시기별
기간 1946 ~ 1975
개요
공과대학 전경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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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설명

공과대학의 위치

공릉동 캠퍼스(1963년 행정구역 개편 전까지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 신공덕리)에는 공과대학이 위치하고 있었다. 푸른 솔밭 기슭 5만 평의 대지위에 우뚝 솟은 공릉동 캠퍼스의 명물로는 숲길과 늪이 있다. 공과대학 정문을 10여 미터 지난 곳에는 전자계산소로 향하는 포장도로가 나 있었다. 길 양 옆에는 우람한 플라타너스가 1~2미터 간격으로 500여 미터나 빽빽이 서 있어서 시골의 신작로 같은 오붓함과 시원함을 주었다. 숲길을 벗어나 조금 더 걸어가면 5백여 평 넓이의 늪이 나타난다. 그것이 바로 당시 서울대학교 캠퍼스의 유일한 늪이었던 공대 늪이다. 늪 주변으로 색 바랜 벤치가 몇 개 놓여 있어서 수식 계산과 물리 실험에 열을 올리던 학생들이 가끔 이곳을 찾아 머리를 식히곤 했다.

도심에서 떨어져 실험과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었기 때문인지 공릉동 캠퍼스의 공학도들의 면학열은 뜨거웠다. 기숙사에서는 소등 시간이 지나도 공부에 집중한 나머지 불을 끄려 하지 않는 학생들을 단속하느라 골치를 앓았다고 한다.

 


(위) 길 좌우로 플라타너스가 빽빽하게 서 있는 공대 숲길 (<대학신문> 1982.10.18.)



(위) 공대 오솔길

 

공과대학의 연혁

공과대학은 경성고등공업학교와 경성광산전문학교그리고 경성대학 이공학부 공과 계통의 발전적 통합으로 이루어졌다공과대학 교사는 창립 때부터 경성대학 이공학부 자리였던 성북구 공릉동 172번지에 위치했다. 6.25 전쟁 후 서울로 올라온 후에는 잠시 용두동에 있는 사범대학 부속중학교 내 임시교사를 사용하기도 했으나이후 다시 공릉동으로 캠퍼스를 옮겨 1975년 관악캠퍼스로 이전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서울대학교 60년사)

1956년 <대학신문>에서는 공과대학의 연혁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7층의 우뚝 솟은 시계탑을 중심하여 25만평이라는 넓은 터전 위에 건평 1만평을 넘는 대건물의 웅자! 조국의 산업을 건설할 큰 포부를 지닌 젊은 이는 오늘도 흰 까운에 기름을 묻히면서 기계 소리 요란한 실험실에서, 화공약품 냄새 코를 찌르는 실험실에서 나가 일할 기술을 배워 익히기에 여념이 없다. 해방과 더불어 공대가 탄생하게 되자 경성제국대학 이공학부 공과계 및 경성공업전문학교(경성고등공업학교) 경성광산전문학교가 통합 개편되어 오늘의 대공대를 이룩하였다. 멀리 교외에 위치하여 막심한 교통난과 6.25 동란으로 시설 전부를 파괴 당하여 '공(空)'과대학으로 될 뻔했으나 미네소타 대학과 자매 관계가 체결되어 2백 8십만여 불의 원조를 받게 되어 자재가 목하 계속 입하중이니 동양 제일을 자랑하는 건물에 속하게까지 충실할 날도 멀지 않을 것이다. 부산에서 여러 대학과 더불어 전체 연합강의 수업을 하다가 1953년 환도하였으니 미 제8군이 교사를 사용하는 관계로 용두동 사대 교사 일부에서 협소한 수업을 하다가 추억의 저쪽으로 사라지고 1954년 8월 대망의 본교사 복귀가 실현되었다."  (<대학신문> 1956.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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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옛 서울대 공과대학 자리(현재 서울과학기술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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