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설명
■ 치과대학의 위치
치과대학의 전신은 1922년 4월 설립된 사립 경성치과의학교이다. 당시 교사는 조선총독부의원 건물 일부 및 경성의학전문학교 교사 일부를 빌려서 사용한 것이었다. 그러나 임상실습실이 부족하여 1924년 4월 당시 황금정(현 을지로) 일본생명보험주식회사의 건물 일부를 빌려서 부속 기관을 이전하였다. 이후 1927년 무상으로 양여받은 남대문로 3가 관유지 662평에 새롭게 교사를 건축하여 1928년 교사 및 부속병원을 이전하였는데, 서울대학교 발족 당시 치과대학은 이곳 소동공 자리에 계속 위치하고 있었다. 해방 후 1946년 사립 경성치과의학교는 국립서울대학교에 편입되어 치과대학 및 부속병원으로 재편성되었다. 6·25 전쟁 피난 시절에는 부산시 중구 대청동에 대강의실, 중강의실, 소강의실, 직원실, 숙직실 등 임시 교사를 마련하였다. 서울로 돌아온 후에는 소공동 본교사를 계속 사용하다가 연건동 의과대학 구내에 교사를 신축, 1969년 12월 이전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치과대학 임상 실습 광경 (1956)
연건동 치과대학
■ 피난 시절의 치과대학 부속병원
1950년 6·25 전쟁의 발발로 수업이 중단되었지만, 부산으로 피난해 학업을 이어갔다. 피난 시절 치과대학의 임시교사가 세워진 대청동은 의과대학이 자리한 광복동과 마찬가지로 도심지에 해당하는 곳이었는데, 이는 전쟁 당시 의료 수요가 컸기 때문이다. 한편 치과대학 부속병원은 토성동 경찰병원과 광복동 김치과의원 내에 임시진료소를 두어 교육과 진료를 계속했다. 김치과의원은 1950년 12월 피난 당시 화물차에 실어 가져온 치과대학의 학적부, 현미경, 치료 기구 등을 임시 보관한 곳이었다. 1952년 5월부터 신입생과 2학년, 3학년 학생들은 대청동의 신축 가교사를 사용했으나, 4학년생들은 임상실습을 진행해야 했기에 경찰병원과 김치과의원 내 설치한 부속병원에서 수업하였다. 치과대학 부속병원은 1953년 4월 초 광복동에 있는 개인 소유 2층 건물을 빌려다가 수리하여 그해 6월 개원하였다. 새로 개원한 부속병원은 구강외과, 보철과 환자를 비롯한 내원 환자들이 늘어났고, 미군 병원에서 근무하던 교수들도 모여 활기를 띠었으며, 피난 생활 중 4학년 학생들의 임상실습에 사용되었다. 교수진이 부족한 상황 속에서도 강의는 계속되어 5회, 6회, 7회 졸업생이 부산 피난지에서 배출되었다. 서울 환도후에는 전란으로 흩어졌던 교수와 학생이 다시 모여 전후 복구 및 정상화에 전력을 기울이며 새로운 치의학 발전의 계기를 만들어갔다.
참고문헌
서울대학교 40년사 편찬위원회,『서울대학교 40년사』, 1986.
서울대학교 60년사 편찬위원회,『서울대학교 60년사』, 2006.
서울대학교 70년사 편찬위원회,『서울대학교 70년사』, 2016.
서울대학교 치과대학,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사』 제2권, 20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