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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템

국립서울대학교 개학 반세기사(1895-1946) 대외 공개

개요 정보
생산 구분 행정 기록
매체형태 전자
언어 한국어
생산자 서울대학교 총동창회
생산일자 2016.12.25
보존방법 병행 (원본, 사본)
유형 복합
페이지 1092
파일 포맷 PDF
  • 668
  • 6
  • 1
기술정보

<서울대학교 개학 120년 기념 국립서울대학교 반세기사(1895~1926)>는 서울대학교(총장 성낙인)와 서울대학교 총동창회(회장 서정화)2016년 개교 70주년을 맞아 발간했다.

이태진 국사학과 명예교수를 위원장으로 하는 '국립서울대학교 개학반세기역사 편찬위원회'에서 집필을 담당했으며,  ▶서장 : 국립서울대학교 뿌리 찾기의 민족사적 의의1: 조선·대한제국기2: 일제강점기3: 광복 이후4: 각 대학 전사(前史)로 구성되어 있다.

 

※ 편찬사업의 취지

18952월 청일전쟁이 종반에 접어든 시점에 군주 고종은 교육조칙(敎育詔勅)’을 반포하고, 이어서 3, 4월에 조칙의 뜻을 실천하는 첫걸음으로 법관양성소와 한성사범학교를 출범시켰다. 한두 해 뒤에는 소학교령을 내리고 관립으로 여러 전문학교와 중학교의 설립을 후속시켰다. 이 바쁜 걸음을, 일본이 19042월 러일전쟁을 일으켜 한반도에 병력을 출동시킨 상태에서 저지하기 시작했다.

일본은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이를 배경으로 190511월 대한제국에 대해 보호조약을 강요하고 이듬해 2월부터 통감정치를 시작했다. 외교뿐만 아니라 국정 전반에 대해 간섭하면서 교육 부면에서 대한제국 정부가 추진하던 근대교육 기반 구축을 제지 또는 방해했다. 한국인들로부터 아예 고등교육의 기회를 박탈하고 식민지 교육체제를 구축할 계획이었다. 19108한국병합이 강제된 뒤, 기존의 관립 전문학교들은 모두 격하 조치를 당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부단한 투쟁으로 교육의 명맥은 유지되었지만 뒷걸음질만 치게 될 수밖에 없었다. 근대국가 수립에 필요한 인력 양성을 위한 고등교육의 역사에 잃어버린 반세기가 펼쳐졌다.

<서울대학교 개학 120년 기념 국립서울대학교 개학 반세기사(1895~1946)>(이하 개학 반세기사로 약칭) 편찬 사업은 그 잃어버린 반세기의 역사를 되찾기 위해 기획되었다. 광복 70년이 된 시점에서도 우리의 근대적 고등교육이 일제에 의해 비로소 갖추어진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우리 스스로 근대국가 건설을 위한 인재 양성 목표의 고등교육의 역사가 있는 것이다. 이런 잘못된 역사의식이 방치된 상태에서 진정한 발전이 과연 가능한가? 구한말 우리 선조들은 근대국가 건설을 위해 각종 고등교육 기관들을 관립으로 설립했다. 당시 관립은 정부 주도란 뜻으로 오늘날 국립에 해당한다. 반면 지방 관청에서 세운 학교는 공립이라고 하여 이와 구분했다. 관립 전문학교들의 실체와 위상이 이러하다면 국립서울대학교가 그 역사를 끌어안아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 아닌가? <개학 반세기사> 편찬사업은 곧 뒤늦게나마 이 의무를 다하기 위해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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