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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역사기록물 콘텐츠 < 민주화운동과 서울대학교 3 > http://archives.snu.ac.kr:80/DAS/g.do?gidx=33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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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렉션

미네소타 프로젝트와 서울대의 발전 대외 공개

개요 정보
구분 정책/행정 > 기획/계획
기간 1954.09.28 ~ 1962.09.28
개요
행정대학원 고문들과 기념 촬영(1959)

행정대학원은 1959년 미네소타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행정기관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해 설치되었다. 처음에는 법과대학 소속이었다가 1931년 독자적 대학원으로 독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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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설명

■ 미네소타 프로젝트와 서울대의 발전

미네소타 프로젝트가 시작된 이래 서울대학교는 눈부신 발전을 보였다. 인재양성뿐만 아니라 시설원조가 이루어져 최신식 장비와 물품의 도입, 시설복구, 건물신축 및 증개축 사업이 진행됐으며, 특히 공과, 농과, 의과 등 이공 계통의 비약적인 발전을 불러왔다. 미네소타 프로젝트가 처음 시작할 때에는 주로 공대, 농대, 의대를 집중적으로 지원했지만 사업이 진행됨에 따라 지원분야가 점차 확대되었고 행정대학원, 보건대학원, 교수연구원이 설치되었다. 19581015일자 대학신문에는 미네소타 프로젝트의 중간 성과를 평가하는 기사가 실렸다이 기사는 '미네소타 프로그람에 의한 부흥상 - 나날이 약진하는 서울대'라는 제목으로 공대, 농대, 의대, 수의대의 복구 및 발전 상황을 소개하는 한편, 전쟁 후 열악한 상황속에서 이루어낸 미술대학의 문화교류 성과를 알리고 있다

 


미네소타 프로그람에 의한 부흥상 (「대학신문」, 1958.10.15.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원한의 6·25 포탄의 세례를 사정없이 받았던 서울대학교 농, , , 수의대 등 5개 대학은 1954928일 체결된 ICA(당시는 FOA) 와 미네소타 대학 간의 협조 협정에 따라 전화의 상흔이 점차 아무러 가고 일신우일신하여 외국의 저명대학에 어깨를 겨누는 데 거의 손색이 없게 되어가고 있다. 3년 계획으로 총액 180만 불을 계상했던 인사교류는 착착 실현되어 첫해인 55년에 53, 56년에 50, 57년에 30, 58년에 18명 도합 151명의 서울대 교수들이 도미하여 외국의 문물과 교육의 시찰을 마치고 105명이 귀국, 46명은 현재 도미 중에 있으며 미네소타 대학에서 각각 전공 분야의 연구에 여념이 없다고 한다."  (「대학신문, 1958.10.15.)

 

기사 내용에 따른 공대, 의대, 농대, 수의대의 발전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공과대학

"규모에 있어서나 시설에 있어서나 내용 충실에 있어서나 교과진에 있어서나 국내에서 첫째로 꼽을 수 있는 공과대학은 방대한 기존 건물이 사변으로 가장 피해가 혹심하였지만 반면에 최속도로 복구가 되고 수많은 연구 업적을 남겼으며, 또한 남기고 있는 것도 공대의 2대 특색이다279828평의 대지 위에 세웠던 건물 43동 중에서 21(건평 52,566)이 전화를 입었으며 그 중에서도 4호동의 와사(瓦斯) 발행소와 16호동 차고, 4호동 39호동 낭하가 가장 심하게 폭격당하였으나 완전 복구되어 있으며 600명 수용의 기숙사도 착공하여 명년 내로 준공하리라 한다특히 내부 시설에 있어 미국 MIT 대학의 선박모형 시설(탱크)보다 3미터가 더 큰 근대설비로서 한국 초유의 선박모형수조시험고속실험실이 지난 9월부터 사용되고 있는 전자자동계산 실험실이 있고 6대의 개소린 및 중유기관이 설치된 50마력의 전자압력측정 다이나모메터가 완성된 내연기실험실’, 미국에서 최신 발전된 전자식 응용 측정기 및 기록장치가 도입되어 한국에서는 한국에서는 ICA 원조자금으로서 이 분야가 개척되어 있는 응용해석실험실, 토질 시험실, 탄소신속분석장치(고주파가열식) 등등이 있다." (「대학신문, 1958.10.15.)

 

공대 자문관 Harold E. Babbitt이 작성한 보고서 (1961) 

서울대 공대의 연혁과 현황 및 발전상, 자문관 활동 사항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 의과대학

"개교 이래 1,418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그 중 의사국가고시에 99퍼센트의 합격률을 보여주고 있는 의과대학은 현재 89명의 교수 요원(유급 조교 이상)을 확보하고 있는데 사변 전까지는 이렇다 할 발전은 별로 없었으나 사변 후 특히 4278년 미네소타 대학과 서울대와의 자매관계가 체결된 후 다음과 같은 각 항별로 현저한 발전을 가져왔다.

1. 교수 요원(조교 이상) 외국 유학 동태

미네소타 플랜에 의한 ICA 푸로젝트로 미네소타 대학에서 1년 내지 3년 연구를 마치고 귀국한 교수 요원이 33명에 달하고 있으며 현재 그곳에서 7명이 연구 중에 있다한편 ICA 원조 외에 개인적으로 미국 영국 독일 불란서서 유학을 마치고 도라온 교수들이 19명이고 지금 미국 영국에서 연구를 하고 있는 교수가 4명이다.

2. 기구

1) ‘기초에 있어서는 별로 변동이 없으나 임상에 있어서는 4287년부터 미국의 예를 따라 내과를 소화기내과 호흡기내과 순환기내과 전염병내과로 사분과하고 외과를 일반외과 흉부외과 정형외과 신경외과로 사분과하여 횡적인 종합 진단 등 많은 성과를 올리고 있다.

2) 종전에 예속되었던 검사실을 미네소타 대학 원조 등으로 시설을 완비하고 중앙검사실로 승격 독립시켰으며

3) 종전 각과에서 취급한 시설 교재 등의 처리를 하여 오던 것을 작년에 중앙공급실을 신설하고 시설 교재 및 기구의 배정 및 설치 사무를 일원화하였다.

4) 극빈자를 위해서 무료 산실을 신설하여 많은 임산부를 위해 공헌 봉사하고 있으며

5) 부속 간호고등학교를 동대학 간호학과로 승격시키고 명년부터 학생 모집이 실시되며

6) 보건학 연구 보건사상 계몽 및 교육 보건행정 요원 양성을 목적으로 보건대학원을 신설하고 명년 4월부터 학생 모집을 하게 된다.

7) 역시 미네소타 원조로 마취과를 최근에 신설하였다.

3. 시설

1) ICA 원조 자금 약 68만불(55년도~57)과 대충자금(55년도~57년도) 75천만원으로 의대 건물 및 병원을 개축 및 수리하였으며

2) 오만 깨톤의 저수 탱크를 만들고 기타 난방 전기 시설을 거의 완료하였으며

3) 간호학과 건물이 착공되어 오는 12월 초에는 준공된다.

4) 오십만의 ICA 원조로 심부 X레이 치료기 전기심도기 기초, 임상 양용 혈액 와사 측정기 조직배양 시설(200) 등 각종 시설 실습 기재 기구를 도입 설치하였다.

4.

4289년부터 개업의 재훈련을 위해서 매년 의학 강습회를 개최하여 다대한 성과를 거두고 있으며 작년부터는 모자보호강습회를 개최하고 어머니들 계몽에 주력하고 있다. 그리고 학생들 실습은 사변 전에는 부속 병원에서만 하여왔으나 작년부터는 수도육군병원 경기병원 중앙보건소 등 교외에도 학생을 보내어 실습하게 하고 있다. 한편 도서실에는 록펠러 재단에서 40종의 도서가 기증되었으며 미국을 비롯한 영독불서 메디칼 저날(61년도까지 계약) 157종이 구입되고 있어 동 대학 발전을 더욱 뒷받침할 것이다.

5. 장차 계획

58년도 ICA 원조 자금 약 27만불 대충자금 12억원과 미도입분 자료로 1)의료기술학교와 2)남한 각지에서 수집한 자료로 한국 유일의 의학박물관을 부설할 것을 추진하고 있으며 3)부속병원에 재활과를 신설하고 불구자 치료에 주력할 것이라 하며 4)대규모의 간호원 기숙사가 신축되리라 한다." (「대학신문, 1958.10.15.)

 

 농과대학

"고농 시절의 연륜까지 헤이자면 벌써 이순의 경지로 접어든 농대이지만 노익장의 기개를 잃지 않고 일진월보하는 발전상은 실로 괄목할만하다. 애당초 서울대학교의 일원으로 발족할 때에는 일인에게서 물려받은 빈약한 고농 건물과 학생 2~3백 명에 불과했다오늘날 농대의 이름은 농촌 경제개발과 문화 향상의 총본영으로서 이미 확립된 기반 위에 연히 빛나고 있다. 8과 천백여의 학생 수에 미네소타 플랜으로 내한하게 된 외인 교수를 합해서 60여명의 권위 교수진이 형성되어 있다. 동란 이후 맨 처음으로 복귀하여 그 동안 재건사업을 계속해오는 한편 교과면에도 획기적인 강화를 시도해서 각종 실험기구를 도입 비치하고 명년부터는 농가정학과를 증설해서 이론과 실천을 겸하는 농촌문화 역군을 양성하게 될 것이다. 미네소타 대학과 자매관계를 맺고서 1955년 이래 농대에 배정된 건물 기구 등의 시설 복구비만 하드라도 외자 120만 불, 한화 10억여 만원이 계상되고 있다본관이 3층으로 증축되었고 새로 강당이 세워졌으며 신관이 착공 중이다. 오백여명의 수용 능력을 가지는 기숙사는 서울대에서 톱으로 작년 10월부터 운영되고 있다. 도서관 식당 등 아담한 건물이 이미 준공되어 학내 연구생활에 만반의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각과의 실험 실습장이 완비되어 있어 근대식 방법에 의한 교육이 시행되고 있으며 전남에는 49백만 평에 달하는 광활한 연습림을 보육하고 있다. 동란 중 피폐된 동 연습림의 시설 복구비로서 이미 5천만원의 예산이 배정되어 면목도 새롭게 재건되어가고 있어 복구사업이 완료 되는대로 우선 임학과 학생의 일부를 교대로 현장에 파견 실지 교육에도 주력할 것이라 한다. 복귀 이래 원조액의 대부분이 건물 복구면에 충당되어 왔었으나 그 계획의 진전에 따라 근년부터는 다시 도서 실험실습 기재 등의 내용 보충에 주안을 두어 현저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대학의 이와 같은 발전 부흥과 보조를 같이 해서 농대생들의 질적 향상은 물론 그 활동 범위도 들로 산으로 도시로 시골로 때와 곳의 제약 없이 뻗어나가고 있다. 4H 클럽을 중심으로 한 농촌계몽운동을 위시해서 국가농업 정책의 근간을 이루는 기본 자료 수집을 위한 농촌경제 실태조사 등의 전문적인 임무도 담당하고 있다. 학보 <상록>이 꾸준히 나오고 있으며 특색 있는 근로일 행사에는 흥겨운 노래에 장단 맞춰 학장 이하 교수 학생 전원이 참가하여 배우고 실천하는 일선 역군으로서의 수범(垂範)도 하고 있다. ‘농자천하지대본이라드니 농대자천하지대대본의 칭호가 마련되어 가고 있다." (「대학신문, 1958.10.15.)

 

 

농대 자문관 Roy O. Bridgford가 작성한「College of Agriculture」 보고서 (1961)  

미네소타에서 들여온 농작물을 농대에서 재배하고 연구하는 모습들이 사진으로 실려있다.  

 

□ 수의과대학

"4286년(1953) 4월 농과대학으로부터 분리되어 현재 한국 유일의 수의과 대학으로 군림하고 있는 동 대학은 그동안 369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으며 300명의 학생과 80명의 교수 요원(조교 이상)을 확보하고 있으며 미네소타 대학과 서울대와 자매관계 체결 후 3명의 교수가 미에서 연구를 마치고 도라왔으며 현재 3명의 교수가 그곳에서 연구를 하고 있다. 그리고 외인 교수로는 과반 이대통령의 초청으로 내한한 카나다의 몬트리오 대학교수이며 3.1 운동 당시 우리 애국자들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스코필드 박사가 강의를 담당하고 있다. 시설면에 있어서도 4287년 시내 성북구하월곡동에 광대한 대지를 얻어 부속실험동물사육장을 신설하고 각종의 수많은 가축과 실험동물을 사육함으로써 교수 및 학생들의 연구에 공하고 있다. 그리고 부속 가축병원은 나날이 환자가 증가되고 있어 일일 평균 오십여건의 소동물을 치료하고 있다. 한편 미네소타 대학 원조 자금 28천불로 그동안 실험 실습 기재 기구를 도입 설치하여 명실공히 내용 충실을 기하였으며 원조 자금과 기성회비의 일부로 강의실 6개 실험실 4개 도서실 회의실 기타 사무실을 포함하는 최신식 2층 및 3층 건물이 오는 11월에 준공(지난 7월 착공)됨으로써 총건평 1,254(현건평 867)의 대건물과 약 13천평(사변 전 95백평)의 교지를 갖게 되는 등 비약적인 발전을 하고 있다." (「대학신문, 1958.10.15.)

 

미술대학 '미네소타대학 교환 미술전'

미네소타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동안 서울대와 미네소타대는 자매결연의 상징으로 미술작품 교류 전시회를 개최하여 문화교류의 장을 마련하였다. 1957년 서울대 미대에서 보낸 작품들이 미네소타대학에 전시되어 호평을 받았고, 이듬해 미네소타대 측에서 보낸 작품들이 523일부터 31일까지 서울대학교 대강당에 전시되었다.  

 

"초라한 아뜨리에에서 지고한 미를 창조. 미대 학생 작품이 미국 각지에서 대호평! ...특기할 것은 해외 미술교류다. 서울대학교와 자매결연에 있는 미네소타대학과의 작품교류가 즉 그것이다. 한국학생의 미술작품이 해외에 소개된것은 이것이 처음이며 미국각지에서 대호평을 받고있다한다..." (대학신문, 1958.10.15.)

 

미술대학의 장발 학장은 1958519일자 대학신문에 미네소타대학 교환 미술전을 앞두고 아래와 같은 글을 기고했다. 서울대의 여러 시설들은 미국의 원조를 받고 있지만, 예술과 민족문화 등의 정신적인 부분은 우리와 미국이 평등한 입장에서 상호교류할 수 있다는 자긍심을 드러냈다.

 

덕불고 필유린이라는 동양의 옛 말은 동양 사람들의 심정에 뿐만 아니라 서양세계에서도 쉽살이 공명될 수 있는 진리일 것이다이와 꼭 같은 것을 우리는 예술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진실로 아름다운 것은 결코 고독할 수가 없으며 반듯이 사랑을 받게 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그러므로 작년 가을에 우리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의 교수 및 학생작품들이 미네소타 대학의 알선으로 미국에서 전시되었을 때 동 대학에서 뿐만 아니라 미국의 주요한 십여 도시에서 깊은 사랑으로 마지하여 주고 훌륭한 찬사를 아낌없이 보내온 우정에 대하여 감사를 바치는 바이며 이와 동시에 이번에 미네소타 대학에서 보내온 교수 및 학생 작품 83점을 우리나라에서 전시하게 된 것을 크게 기뻐하는 바이다.

우리 한국과 미국은 역사적으로 서로 성격이 전연 다른 전통을 지니고 있고 더욱이 정치 경제 자연과학에 있어서는 성격의 차이보다는 그 정도의 차이가 막대하다는 것은 주지되어 있는 객관적 사실일 것이다그뿐 아니라 우리 한국은 전란으로 인하여 입은 상처를 회복하기에 여러 우방들 특히 미국의 원조를 이미 막대하게 받아왔으며 앞으로도 그것이 필요하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그러므로 우리는 문화교류니 국제협조니 하여도 서로 주고 받는다기 보다는 받아야할 것이 많은 처지에 있는 것이라고도 하겠다

그러나 한 가지 예술에 있어서는 특히 미술에 있어서는 지금 미국에서 전시되고 있는 우리 국보전을 보던지 이번에 미네소타 대학과 서울대학과의 교환전을 두고 생각할 때 여기에 있어서만은 피차 간에 평등한 위치에서 서로 주고 받은 것이라 하겠다우리는 이 점에 크게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우리 민족문화에 대하여 긍지를 가져야 할 것이라고 본다대체로 물질적인 기계문명은 일방적으로 높은 데서 얕은 데로 흐르는 것이나 정신적인 예술은 그것을 이해할 수 있을 만한 위치에까지 서로 도달하지 않고서는 상호 교류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오천년의 역사를 가진 동양 미술에 대해서 역사를 가진 동양미술에 대해서 최근에야 비로소 서양 인사들이 이해하기 시작하여 그 가치를 재인식하게 되고 동양정신도 현대에 와서 비로소 자신의 위치를 자각하는 입장에서 서양적인 것을 참으로 이해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른 것이니 정신적인 문화가 서로 교류된다는 것은 참으로 용이한 일은 아닌 것이다

이런 점으로 보아 이번 교환전이 가지는 의미는 지대한 것이며 이로써 우리 양국 간에는 물질적인 득실까지도 초월하여 심정에 있어서 서로 공감하며 참으로 높은 인간성에서 일치협력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여기에 참된 평화는 깃드릴 것이며 참된 문화가 형성되어 우리는 참으로 고립을 면할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한가지 이번 전시된 작품 중 그 대부분을 우리 미술대학에 기증하여 준 미네소타 대학 당국의 호의와 이 교환전을 적극 추진해주신 미네소타 대학의 부총장 말컴 윌리씨와 동대학 미술관 부관장 미세스 캐서린 내쉬 그리고 한국 주재 미네소타 대학 수석 고문 아서 슈나이더 박사 제씨에게 충심으로 사의를 표하는 바이다." 

(미네소타대학교수 및 학생 작품전시회를 앞두고 - 미대학장 장발, 대학신문, 1958.5.19.)

 

 

 서울대학교에서 열린 '미국 미네소타대학 교환 미술전' (1958)



참고문헌

서울대학교 60년사 편찬위원회,『서울대학교 60년사』, 2006.

서울대학교 기록관, 『지성과 역동의 시대를 열다 1953-1975』, 2016.

김명진1950년대 고등교육 협력에 관한 연구 서울대-미네소타대 프로젝트 사례서울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2009.

오헌석외, 「미네소타 프로젝트의 역사와 서울대학교 발전과정 연구」, 서울대학교 기획연구과제, 2019.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대학신문 디지털 컬렉션, http://lib.snu.ac.kr/find/collec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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