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트 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서울대학교 역사기록물 콘텐츠 < 민주화운동과 서울대학교 3 > http://archives.snu.ac.kr:80/DAS/g.do?gidx=33125

홈 유형 선택

기록이 숨을 쉰다. 서울대학교 기록관 로고서울대학교 기록관

컬렉션

미네소타 프로젝트의 출발 대외 공개

개요 정보
구분 정책/행정 > 기획/계획
기간 1954.09.28 ~ 1961.09.28
개요
1954년 미네소타대학이 서울대와의 협정 체결을 알리며 최규남 총장에게 보낸 서한이다.
  • 2537
  • 48
  • 3
주제설명

■ 미네소타 프로젝트의 출발 

6·25 전쟁 기간 중 임시수도 부산으로 내려갔던 서울대는 1953년 가을 학기부터 서울대 본부와 문리과 대학을 시작으로 서울 캠퍼스에 복귀했다. 그러나 서울 캠퍼스에 남은 전쟁의 상흔은 매우 깊었다. 인적, 물적 기반이 파괴되어 학교 재건을 위해서는 상당한 재정이 필요했지만, 당시 정부의 재정 여건은 열악했고 교육 분야에 충분한 지원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6·25 전쟁 이전 문교부 예산은 정부 예산의 11.4%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전쟁 발발 후 1952년에는 2.0%, 1953년에는 2.6%에 불과했다. 서울대 최규남 총장은 직접 해외 원조기구와 접촉하여 재원을 확보하려 노력했다. 그 결과 서울대와 미국 대외활동본부(FOA)1954년 공학, 농, 의학 등의 분야에 걸친 원조협정을 체결했다. 원조 계획의 실행은 미국의 미네소타대학교가 맡게 되었다. 미네소타대학이 선정된 배경으로는 공학, 농학, 의학 분야의 우수성, 당시 대외활동본부(FOA)의 책임자였던 스테슨(Harold Stassen)이 미네소타대학 졸업생이자 미네소타 주지사 출신으로 국제교육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 등을 엿볼 수 있다. 1954년 8월 1일 미네소타대학 교육학과 교수 타일러(Tracy F. Tyler)가 미네소타대학 캠퍼스 측의 사업 총괄 조정관으로 임명되었고, 이어서 9월 5일에는 미네소타대학 임학과 부교수 슈나이더(Arthur E. Schneider)가 서울대학교에서 사업을 총괄할 수석자문관으로 임명되었다. 1954년 9월 28일, 3개년 동안 공대, 농대, 의대 등 3개 단과대학에 교수진 연수 프로그램, 시설복구, 장비지원 등 180만 달러를 지원하기로 한 미네소타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당시 공대, 농대, 의대에 지원을 집중한 이유는 이 3개 분야가 한국 사회와 경제 발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영역으로 평가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수차례 계약 연장이 논의된 결과 1955년부터 1958년까지 총 545만 1,000달러를 지원받았다. 행정대학원은 1957년부터 지원 프로그램에 추가되었다. 미네소타 프로젝트는 한미합동경제위원회의 주재로 1961928일까지 연장되었고, 추가 지원받은 434만 달러를 공대, 농, 의대 외의 다른 단과대학의 발전을 위해 투자했다미네소타 프로젝트를 적극 추진했던 최규남 총장은 훗날 미네소타 프로젝트의 목적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소회를 밝혔다.

 

내가 이 사업을 추진시킨 주목적은 이 원조를 통해서 서울대학교를 장차 등지고 나갈 유능한 지도자를 양성하자는 데에서였다그러므로 물론 교수도 많이 파견하여 시찰 연구케 할 것이지만 우리 대학의 졸업생-서울대학교를 나온 우수한 청년들을 3년 혹은 4년 동안 장기간 유학시켜 충분히 연구시킨 뒤 다시 모교로 돌아오게 하여 서울대학교의 지도자가 되겠금 하려는 것이 내 마음이다. (「대학신문」, 1954.9.15.)



 미네소타대학교와 기술원조협정 체결 (1954.9.5.)

 미네소타대학교와 기술원조협정 체결 (1954.9.5.)


아놀드(John P. Arnold) 박사 방문 기념 단체사진, 1960년대 초 (신광순 명예교수 기증)
연건동 수의대 건물 앞에서 당시 미네소타 프로젝트의 교환교수(수의대 자문관)로 온 아놀드 박사와 교수일동이 찍은 기념사진이다.
앞줄 왼쪽부터 윤쾌병, 홍병욱, 오순섭 학장, 아놀드 박사, 이영소, 이장락, 옥종화, 윤석봉 교수, 뒷줄 왼쪽부터 임창형, 조병률, 이정재, 김상남, 한수남 교수이다.


The edge of the free world (LTI Alumni Bulletin, Vol.9, Issue.1, 1957.5.18.)

로웰 공과대학(LTI, Lowell Technological Institute)의 대학원장인 해리스 박사는 1956년 섬유공학 자문관으로 서울대학교를 방문한 후, 다음 해 LTI Alumni Bulletin지에 한국과 서울대 방문 소감을 기고했다. 자유진영의 일부인 한국이 공산진영의 위협에 직면하고 있는 상황과 한국원조의 필요성, 6·25 전쟁 후 서울대의 피해상황, 섬유공학과 현황 등을 알렸다. 또한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물자 지원과 새로운 교육방식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서울대학교가 세계적인 대학으로 위상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참고문헌
서울대학교 60년사 편찬위원회,『서울대학교 60년사』, 2006.
서울대학교 70년사 편찬위원회,서울대학교 70년사, 2016.
김명진1950년대 고등교육 협력에 관한 연구 서울대-미네소타대 프로젝트 사례서울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2009.
오헌석 외, 「미네소타 프로젝트의 역사와 서울대학교 발전과정 연구」, 서울대학교 기획연구과제, 2019.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대학신문 디지털 컬렉션, http://lib.snu.ac.kr/find/collections 
전거 레코드
맨 위로

전거 레코드
기록 바구니에 추가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