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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역사기록물 콘텐츠 < 민주화운동과 서울대학교 3 > http://archives.snu.ac.kr:80/DAS/g.do?gidx=33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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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렉션

추억 속의 캠퍼스 : 농과대학 1946-1975 대외 공개

개요 정보
구분 캠퍼스 > 시기별
기간 1946.01.01 ~ 1975.02.28
개요
수원 농과대학 전경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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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설명

농과대학의 연혁

 


수원 농과대학 1호관 (1946)


1960년 수원캠퍼스 시절 농과대학 본관 전경 (김재인 동문 기증)

 

농과대학은 수원 캠퍼스에 자리 잡았다. 농과대학은 1904년 대한제국 학부가 세운 농상공학교 농과에 기원을 둔다. 농과는 1906년 농림학교로 개칭하고 이듬해에 경기도 수원에 신축한 새 교사로 옮겼다. 이후 일제시대에 수원 교사를 그대로 유지한 채 조선총독부 농림학교, 수원농림전문학교, 수원고등농림학교, 수원농림전문학교로 이름을 달리하다가 해방을 맞이하였다. 1946년 국립 서울대학교 발족 시 농과대학으로 편입되었다. 1975년 서울대 종합화 계획 시에도 관악 캠퍼스로 이전하지 않고 수원 캠퍼스 자리를 지켰으며, 2003년에 이르러 관악 캠퍼스로 이전되었다. 1992년에 농과대학에서 농업생명과학대학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농과대학 70주년 기념식 (1976)

 

 서울대 농대생들의 농촌운동과 야학활동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의 전신인 수원고등농림학교의 학생들은 일찍이 1920년대부터 농민 야학을 창설하여 농촌계몽운동을 펼쳤다. 당시 수원고농의 학생들은 학교 주변의 서둔리와 고색리 등지에서 활동하며 농민 계몽을 통해 농촌문제를 해결하고 자주독립을 이루고자 하였다. 이러한 농촌운동의 전통은 1946년 서울대학교가 개교하면서 농과대학 학생들에 의해 계승되었다. 농대 학생들은 1950년대부터 농촌운동 관련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였다. 유럽의 농업국가인 덴마크의 사례를 배우기 위해 덴마크연구회를 만들어 농업 기술을 전수하는 등 농촌 개발을 위한 연구 활동을 이끌었으며, 탑일야학을 개설해 문맹퇴치 운동을 벌였다. 1960년대 들어 농대생들의 야학은 더욱 늘어나 서둔야학, 고색야학, 평동야학, 금산야학, 화서야학 등 여러 야학을 운영하며 경제난과 교육난에 시달리는 농촌 청소년을 위한 교육 활동을 펼쳤다. 특히 서둔야학은 서울대 농대생들이 만든 대표적인 야학으로, 1954년 서둔교회의 성경구락부에서 비롯되어 1965년 독자적 건물로 독립하고 1983년 문을 닫을 때까지 가장 오랜 시간 명맥을 유지하였다. 농촌 야학은 1970년대를 거쳐 산업화와 도시화가 급격히 진전되면서 점차 막을 내리게 되었지만, 농촌에서 시작된 야학 운동의 전통은 이후 도시와 노동 현장 곳곳에서 다양한 형태로 퍼져나간 야학 운동의 바탕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

 

 

농대 실습 광경 (1962)


참고문헌

서울대학교 40년사 편찬위원회,『서울대학교 40년사』, 1986.

서울대학교 60년사 편찬위원회,『서울대학교 60년사』, 2006.

유용태·정숭교·최갑수, 『학생들이 만든 한국 현대사 : 제1권 시대사』, 한울, 2020.

유용태·정숭교·최갑수, 『학생들이 만든 한국 현대사 : 제2권 사회문화사』, 한울,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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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옛 서울대 농과대학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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