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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속의 캠퍼스 : 사범대학 1946-1975

개요 정보
구분 캠퍼스 > 시기별
기간 1946 ~ 1975
개요
사범대학 전경(용두동, 195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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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설명

사범대학의 위치

 


(위) 사범대학 부속 국민학교

 

사범대학은 해방 후 경성사범학교와 경성여자사범학교가 국립 서울대학교로 통합 개편되면서 만들어졌다. 사범대학 발족 당시 교사는 서울시 중구 을지로 540번지에 위치했다. 그러나 6.25 전쟁 후 부산 피난 시절을 거쳐 서울로 돌아오면서 용두동 교사로 이전하였고 1975년 이전까지 이 자리를 지켰다.


(위) 사범대학 용두동 캠퍼스(1957)

 

 

사범대학의 추억

용두동에 있던 사범대학의 명소는 사범대 뒷동산이라고 불렸던 청량대였다. 합동 연구실 뒤편 동산 한 가운데에 이곳의 공기와 바람이 청량함을 알리는 비석이 서 있어서 동산 전체를 청량대라 부르게 되었는데, 이후 청량은 사범대학의 대명사 구실을 하게 되었다. 사범대학의 축제와 교지에도 청량이라는 이름이 사용되었다. 청량대에는 조선시대에 임금이 씨를 뿌리고 밭을 갈았다는 선농단 유적이 있어서 역사적 운치까지 더하였다.

사범대학생들이 사랑한 청량대의 정취는 다음과 같이 <대학신문>에 묘사되어 있다.

 

"...여기서 하늘을, 바람을, 낭만을 호흡한다. 휴게실을 갖지 못한 학생들은 여기서 다정한 벗들과 담소하고, 신문지에 그린 장기판을 벌리고, 책을 읽고 도시락을 펼친다. 잔디밭에 누워 트랜지스터를 듣고, 혼곤히 젖어드는 오수에 등을 기대면 깜빡 강의시간을 놓쳐버리는 삼매경도 있다. 청량대는 개나리 필 때가 한창이다. 해묵은 측백나무 사이로 시야가 노오란 개나리꽃에 파묻힐 무렵이면 청량대는 철을 만난 피서지처럼 원색의 짙은 빛깔로 꾸며진다. 소근거리는 여학생들의 상기한 귀밑과 호탕하게 떠들어대는 남학생들의 웃음소리에 청량대는 언제나 활기에 넘친다. 그 옛날 지존의 왕이 친히 백성들의 농사짓는 것을 바라보았다는 유래를 지니고 있는 곳. 그러나 지금은 기와집이 총총하게 엎드려 있는 도시의 일각. 경춘선을 달리는 디젤차의 기적이 한가로이 퍼지기도 한다. 휴지가 멋대로 버려진 청량대. 그러나 사대생은 청량대를 빼놓고 대학생활을 말할 수 없으리라." (<대학신문>, 1961.4.27.) 

 


(위) 청량대 스케치(<대학신문> 1961.4.27.)

 

사범대학의 또 다른 명물로는 4.19 기념 동상을 들 수 있다. ‘젊은 학도, 봉화를 들었으니 사랑하는 겨레여, 4.19의 외침을 길이 새기라라는 글귀가 새겨진 이 동상은 정의의 횃불을 밝히고 승화한 송중근, 유재식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다. 동상은 현재 문리대의 4.19 탑과 함께 관악 캠퍼스의 4.19 공원으로 옮겨져 있다.

 


(위) 사대 4.19 기념탑(<대학신문>, 1964.4.19.)

 

"2층이든 3층이든 강의실에서 창문을 열면 시야에 빨리 들어오는 위치에서, 현관을 드나들 적마다 상을 우러러 보며 스쳐가게 되는 그 위치에서, 천년을 외롭지 않게 자세를 지켜 의로운 화석으로서 있을 상은 먼 훗날에도 역사의 증인이 될 것이다." (<대학신문>, 1964.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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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옛 서울대 사범대학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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